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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영원한 평화》

I. Kant, “Toward Perpetual Peace” (1795) and the sections “International Right” and “Cosmopolitan Right” in Metaphysics of Morals (1797), both in Kant: Practical Philosophy , ed. Mary Gregor, pp 311-351 and 482-92.

Oct 27, 2025
칸트, 《영원한 평화》

I. Kant, “Toward Perpetual Peace” (1795)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국가 간의 영구평화상태를 위한 6개의 예비조항과 3개의 확정조항, 영구평화의 보장책 및 비밀조항을 담고 있는 두 개의 추가조항, 그리고 도덕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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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평화론
├── 서문
├── 제1절. 예비조항 (전쟁을 막는 소극적 조건)
│ ├── 비밀조약 금지
│ ├── 국가 소유물화 금지
│ ├── 상비군 폐지
│ ├── 국가간 채무 금지
│ ├── 내정간섭 금지
│ └── 상호 신뢰 불가능한 적대행위가 포함된 전쟁 행위 금지
├── 제2절. 확정조항 (평화를 세우는 적극적 조건)
│ ├── 공화정 헌법
│ ├── 자유국가의 연방
│ └── 세계시민법(보편적 환대)
├── 추가조항 (1) 영원한 평화의 보증

│ (2) 영원한 평화를 위한 비밀 조항
├── 부록 (1) 도덕과 정치의 불일치
└── (2) 공법의 초월적 개념에 따른 도덕·정치의 일치

(1) 예비조항

예비조항은 국가간 평화상태의 전제조건을 금지법칙의 형태로 제시하는데, 전쟁을 막는 소극적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중 세 조항은 즉각 엄격한 금지가 필요한 행위의 차원에서 ‘전쟁을 재발하게 할 수도 있는 비밀유보조항이 추가된 (평화)조약체결의 금지’, ‘독립된 현존국가에 대한 타 국가의 상속, 교환, 매매 또는 증여 방식에 의한 취득 금지’, ‘전쟁 중인 국가가 장래평화시 상호신뢰관계를 불가능케 할 종류의 적대행위를 상대국가에게 취하는 것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고, 나머지 세 조항에서는 실행의 연기가 허용되는 행위 차원에서 ‘상비군의 폐지’, ‘국가 간 채무관계의 금지’, ‘타국 내정에 대한 무력개입 금지’가 규정되어 있다.

(2) 확정조항

예비조항을 바탕으로 한 확정조항은 영구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법적·제도적 전제를 제시하는데, 이는 각각 국가법(ius civitatis), 국제법(ius gentium), 세계시민법(ius cosmopoliticum)이다.

첫째, 각 국가의 시민헌법은 공화주의적 체제를 가져야 하며, 둘째, 국가 간의 관계는 자유국가들의 연방적 결합(federation) 위에 세워져야 하고, 셋째, 세계시민법은 보편적 우호성(universal hospitality)의 조건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요약하면 확정조항은 공화주의 통치 형태를 갖춘 주권국가들이 느슨한 국가연합(국제연맹)을 구성하고, 평화로운 교류의 권리를 보장하는 세계시민법을 통해 인류가 점차 국가적 혹은 세계시민적 헌법 상태에 가까워지도록 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다. 칸트에 따르면 공화주의 체제는 권력분립과 대의제를 핵심으로 하며, 인간의 자기이익적 성향 속에서도 전제정으로 타락하지 않을 유일한 통치 형태이다.

1) 공화정 헌법

국민 전체가 권력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는 겉으로는 이상적인 정치 형태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다수의 의지가 전체주의로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래서 칸트는 민주주의보다 공화주의를 더 올바른 정치 형태로 본다. 칸트의 공화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정당화된다. 먼저 이론적(선험적) 차원에서, 공화주의 헌법은 모든 시민이 서로 동의해 법의 지배 아래 들어가기로 약속한 이성적 계약 (?) 의 정신을 반영한다. 즉, 사람마다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인정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합의한 법에 따라 사는 원칙을 세운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다음으로 현실적(경험적) 차원에서, 공화주의는 군주가 아닌 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국민이 스스로 전쟁의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따라서 자기이익과 손실을 함께 고려하게 되어 전쟁을 쉽게 결의하지 않게 된다.

2)자유국가의 연방제(연방주의)

국가들 사이의 관계, 즉 국제법의 차원에서는 각국이 서로 적대적인 자연상태’(전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국가연합(국제연맹)의 형태로 조직화될 필요가 있다. 이 국가연합은 완전한 평화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전쟁 상태와 단일한 세계국가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 즉 소극적인 평화의 형태로 이해된다.

칸트는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이기심과 사악함 때문에, 국가 간 관계에서는 법보다 힘과 이해관계의 논리가 우세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그 대안을 단일한 세계정부(세계공화국)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각국이 자유와 주권을 유지하면서도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느슨한 국가연합 체제에서 해결책을 본다.

완전한 세계국가는 이론적으로는 전쟁이 없는 평화 상태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주권과 충돌하고, 권력이 하나로 집중되는 전제정의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강제적 통합이 아닌, 주권국가들이 자발적으로 맺은 계약에 기초한 느슨한 연합, 즉 ‘계약적 공동체’로서의 국가연합을 최선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3)세계시민법의 원리

국가연합만으로는 영구평화를 완전히 실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칸트는 세계시민법 제시한다. 이 법은 모든 인간이 세계시민으로서 서로 평화롭게 교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으로, 그 핵심은 보편적 환대(universal hospitality)의 원칙이다.

칸트에게서 환대란 타인이 낯선 땅에 도착했을 때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을 권리, 즉 ‘방문의 권리를 뜻한다. 이 권리는 일시적 방문과 평화로운 교류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권리이며, 타국인이 거주하거나 체류할 권리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

이러한 환대의 원칙은 우호적 행동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모두 하나의 지구 위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서로를 잠재적 적이 아니라 평화로운 교류의 상대로 대해야 한다. 그에게 세계시민법은 특정 국가의 시민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을 보편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법적 근거이다.

(3) 추가조항

1) 영원한 평화의 보증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명령하는 도덕적 의무, 즉 ‘영구 평화’를 세워야 한다는 요청이 현실에서 쉽게 실현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자연(Natur) 은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수행한다. 자연은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강제력(fatum) 을 통해 인간이 결국 평화를 향해 나아가도록 만든다. 칸트는 이것을 ‘자연의 섭리(providentia)’ 혹은 ‘자연의 목적성(purposiveness)’ 으로 설명하며, “운명은 기꺼이 따르는 자를 인도하고, 거부하는 자를 끌고 간다” (fata volentem ducunt, nolentem trahunt)라는 말을 인용한다. 즉, 인간이 스스로 도덕법칙을 따르지 않더라도, 자연은 필연적으로 인류를 평화의 방향으로 밀어 넣는다.

구분
자연 (natura)
섭리 (providentia)
의미
우리가 경험 속에서 인과적 법칙으로 관찰할 수 있는 세계의 질서
그 질서가 마치 어떤 ‘지혜로운 의도’에 따라 미리 계획된 것처럼 보이는 것
인식의 태도
인간의 경험과 이성으로 이해 가능한 영역
초월적, 신적 차원의 ‘목적’으로서 인간 이성이 인식할 수 없음
설명 방식
“자연은 인간의 이기심을 서로 충돌시켜 평화를 낳는다” → 경험적 설명
“이런 질서가 존재하는 것은 신의 지혜가 미리 계획했기 때문이다” → 신학적 해석

“우리는 자연의 목적성을 볼 수 있을 뿐, 신의 의도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 따라서 ‘섭리’ 대신 ‘자연’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겸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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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목적성은 이성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세우는 ‘해석의 틀’.

우리가 자연을 “무질서한 사건들의 집합”으로만 보면, 이성은 “왜 인간이 도덕적으로 노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근거를 잃게됨. 그래서 칸트는 이성의 실천적 필요에 의해 자연이 도덕의 목적(즉, 평화)과 조화된다고 가정해야 한다(als ob) 고 말하는 것.

 

자연은 처음부터 인류가 지구 전체에 흩어져 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 사람들이 모든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전쟁(war) 을 통해 그들을 강제로 흩어놓았다. 예를 들어, 몽골계 민족의 침입이 북쪽 부족들을 혹한의 지방으로 밀어냈고, 이 과정에서 인간은 불가피하게 적대와 이동을 통해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고 정착하게 되었다. 전쟁은 인류에게 고통을 주지만, 동시에 문명을 확장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즉, 자연은 인간의 파괴적 본능을 이용해 결과적으로 인류 전체의 ‘거주지의 다양화와 문명화’를 이끌어낸다.

자연은 인간의 ‘선함’이 아니라 ‘악함’을 통해 평화를 실현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이익에 따라 행동하지만, 이기심들이 서로 충돌하면 견제와 균형의 체계가 만들어진다.그래서 칸트는 “악마들의 사회(nation of devils)라도, 이해력만 있다면 국가를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국가의 제도적 설계가 잘 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아도 법의 강제 속에서 좋은 시민(good citizen) 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을 ‘공공의 질서’를 세우는 동력으로 변환시키며, 결국 내부의 법적 질서 → 외부의 국제적 질서 → 보편적 평화로 발전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결국 자연은 인간이 의식적으로 선해지지 않아도 ‘기계적 메커니즘(mechanism of nature)’ 을 통해 인류를 법과 평화의 질서로 몰아간다. 전쟁은 국가의 형성을 강제하고, 국가 간 경쟁은 제도적 통제를 낳으며, 교역과 상호의존은 국제적 협력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자연은 결국 “이성이 지향하는 도덕적 목적(영구 평화)”을 현실에서 실현하도록 보증(guarantee) 한다.

2)영원한 평화를 위한 비밀 조항

칸트는 ‘비밀조항’이란 개념이 공적 협상에서는 모순이지만, 국가의 체면상 비공개로 둘 수 있다고 본다. 그 유일한 조항의 내용은 “전쟁을 준비하는 국가는 평화의 조건에 대한 철학자의 원칙을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철학자의 조언을 직접 구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전쟁과 평화의 보편적 원칙을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이는 법률가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이성의 비판을 들을 의무가 있음을 뜻한다. 칸트는 권력과 법이 힘에 의해 왜곡되지 않으려면 철학의 비판적 목소리가 공적 영역에 남아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비밀조항’은 철학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청이며, 이것이야말로 영구 평화를 위한 이성의 숨은 조건이다.

(4) 부록

1)도덕과 정치의 불일치에 대하여

도덕은 스스로 실천적인 법이며, “해야 한다(ought)”는 의무를 인정한 이상 “할 수 없다(can’t)”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도덕과 정치가 충돌할 수는 없으며, 만약 정치가 단지 이익을 얻는 기술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도덕이 아니다. 칸트는 “정치는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지만, 동시에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한다”고 말하며, 정치가 도덕의 한계 안에서만 정당성을 갖는다고 본다. “정직은 최선의 정책”이라는 격언이 현실에서 자주 어겨지더라도, “정직은 모든 정치보다 낫다”는 명제만이 참된 정치의 조건이다. 권력보다 도덕이 우위에 있으며, 도덕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비춰주는 이성의 빛이다.

칸트는 “도덕적 정치가(moral politician)”와 “정치적 도덕가(political moralist)”를 엄격히 구분한다. 칸트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도덕을 왜곡하는 “정치적 도덕가”를 경계하며, 도덕의 원칙에 따라 정치를 설계하는 “도덕적 정치가”를 이상형으로 제시한다. 후자는 불완전한 제도라도 자연법의 이상에 맞게 점진적으로 개선하려 하지만, 전자는 인간의 본성을 핑계로 불의한 질서를 영속시킨다. 현실적 정치가들이 자랑하는 ‘실용적 기교’는 사실상 권력에의 순응일 뿐이다. 그들은 현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정당화하며 “기회가 있으면 먼저 행동하라(Fac et excusa)”, “저질렀다면 부인하라(Si fecisti, nega)”, “분열시켜 지배하라(Divide et impera)” 같은 냉소적 원리를 따르고, 이를 통해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이런 교활한 정치술은 일시적 안정만 낳을 뿐, 궁극적으로는 스스로의 모순으로 붕괴한다.

칸트는 진정한 정치란 도덕법칙을 그 한계로 삼는 정치라고 말한다. “정의가 실현된다면 세상이 무너질지라도(justitia, pereat mundus)”라는 원칙은 과장된 듯 보이지만, 모든 정치의 근본 규범이다. 정치의 목적은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I ought)”는 순수한 의무의 원리에서 출발해야 하며, 실용적 타협은 정당성을 훼손한다. 도덕은 정치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단호히 해결하는 기준이며, 정의는 결코 계산이나 효율성으로 대체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다. 그렇게 도덕에 기반한 정치만이 느리더라도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

2)공법의 초월적 개념에 따른 도덕·정치의 일치

칸트는 모든 ‘공적 권리’, 즉, 국가법, 국제법, 세계시민법의 정당성 기준을 ‘공공성의 원리’로 제시한다. 이는 “타인의 권리와 관련된 모든 행위는, 그 행위의 원칙이 공개적으로 드러났을 때 목적이 무너진다면 부정의하다”는 초월적 공식으로 요약된다.. 이 원칙은 단순히 도덕적인 지침이 아니라, 법과 정의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왜냐하면 권리는 본질적으로 ‘공적으로 승인될 수 있는 정의’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폭군을 몰아내기 위한 국민의 반란이 정의롭게 보이더라도, 만약 헌법 제정 단계에서 “폭군이 나오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조항을 공개적으로 포함시킬 수 없다면, 그 행위는 정당하지 않다. 국가 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약속을 어겨도 된다’거나 ‘힘이 커지는 나라를 선제공격하겠다’ 같은 원칙은 공개될 수 없기에 부정의하다. 칸트에게 정당한 권리 주장은 항상 공개와 검증에 견딜 수 있는지로 판별된다.

이 원칙은 국제법 영역에서도 ‘도덕’과 ‘정치’의 통합 가능성을 보여준다. 칸트는 “국가 간의 합의가 공개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한, 그것은 진정한 국제법이 아니라 사적 권리 관계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국가의 자유’를 유지하면서도 전쟁 상태를 벗어나려면, ‘강제력을 동반하지 않는 연합적 법질서, 즉 자유국가들의 연맹을 구성해야 한다. 이것이 그가 말한 “국제법의 유일한 합법적 형태”이다. 칸트는 약속의 이면조항, 힘의 논리에 근거한 전쟁 명분, 약소국 침탈의 정당화 등을 ‘위장된 불의’로 규정하며, 진정한 정치와 국제법은 공개될 수 있는 원칙, 즉 모두의 동의와 검증에 견딜 수 있는 규범 위에서만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공개를 필요로 하는 모든 정치적 원칙은 정의와 조화된다”고 결론짓고, 이를 ‘영구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법적·도덕적 토대이자, 인류가 끝없이 가까워져야 할 과제로 제시한다.

 

I. Kant, “International Right” and “Cosmopolitan Right” in Metaphysics of Morals (1797)

 

(1) The Right of Nations

칸트는 『도덕형이상학』의 국제법 부분에서, 국가들을 서로 자연상태에 있는 개인들에 비유한다. 국가들은 법적 구속 없이 “자연적 자유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 상태는 실제 전쟁이 없더라도 항상 전쟁의 가능성을 내포한 부정의한 상태라고 본다. 그러므로 인접한 국가들은 이 상태를 벗어나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이를 위해 칸트는 자유국가들의 연맹(federation of free states) 을 제안한다. 이는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외부 공격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협약적 결합으로, 언제든 탈퇴할 수 있는 느슨한 연합체이며 세계정부와 같은 강제적 통치 구조는 아니다. 즉, 국제법이란 국가들이 자연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맺는 공법적 연합 상태를 의미하며, 그 목적은 단순한 이익이 아니라 영구 평화를 향한 도덕적 의무에 있다.

또한 그는 국가가 국민을 전쟁에 동원할 권리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국가는 국민을 자신이 만든 산물처럼 간주하며 마음대로 전쟁에 이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공동입법자(co-legislator) 로서 자기 목적(End in itself) 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가 정당하게 전쟁을 수행하려면 국민이 대표를 통해 자유롭게 동의한 절차적 정당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칸트에게 전쟁의 권리는 주권자의 특권이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입법에 참여하는 공화적 헌정 원리와 결합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는 도덕적 문제였다.

칸트는 먼저 국가 간 자연상태에서의 전쟁권(right to go to war) 을 논한다. 전쟁은 한 국가가 법정 소송이 불가능한 자연상태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힘을 행사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위협적 군비 증강이나 영토 확장 같은 ‘예비적 침해’도 공격의 정당화 근거가 되며, 이런 상황에서 약소국의 선제적 자위권도 허용된다. 이 논리에서 “세력균형의 권리(right to balance of power)” 개념이 생겨난다. 그러나 칸트는 동시에 전쟁 중의 권리(ius in bello) 가 반드시 평화로의 복귀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응징전, 절멸전, 예속전은 모두 부정의하며, 간첩·암살자·독살자 활용 등 장래의 평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수단도 금지된다. 패전국의 재화 수탈은 금지되며, 보급물자 등은 영수증을 발급받아 이후 평화조약에서 공정하게 정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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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징전 (bellum punitivum) — ‘처벌하려는 전쟁’
    • →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죄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벌을 주려고 벌이는 전쟁. 칸트는 “국가들끼리 서로를 벌주는 건 정당하지 않다”라고 본다. 국가들끼리는 서로를 다스릴 권한(법적 상하관계)이 없기 때문에 처벌 목적의 전쟁은 허용될 수 없다.

  • 절멸전 (bellum internecinum) — ‘상대국을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전쟁’
    • → 상대국의 국민이나 국가 자체를 완전히 파괴·말살하려는 전쟁. 이런 전쟁은 인류 전체의 파국을 가져올 수 있으니 절대 금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 예속전 (bellum subiugatorium) — ‘복속·식민화하려는 전쟁’
    • → 다른 나라를 정복해서 그 국민들을 노예로 만들거나 그 국가를 영구히 복속시키려는 전쟁. 칸트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영구적으로 지배·노예화하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본다.

  • 간첩·암살·독살 등 비열한 수단 금지
    • →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장래의 평화(다시 믿고 협상할 수 있는 상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단들(스파이처럼 국민을 배반하게 만들기, 암살·독살, 거짓정보 살포 등)은 사용하면 안 된다. 이유는, 그런 수단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서로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어 평화 자체를 깬다는 것.

  • 전리품·징발에 관한 원칙(약간 실무적인 규칙)
    • → 패전국의 물건을 함부로 약탈(plunder)하는 것은 불법이다. 다만 전쟁 중 필요한 보급물자(징발)는 일시적으로 가져갈 수는 있지만, 받을 때 영수증을 남기고 전쟁이 끝난 뒤 평화협정에서 공정하게 정산해야 한다 — 즉 “임시로 가져간 것 = 약탈이 아니다”를 분명히 하고, 나중에 보상 또는 정산할 책임을 지라는 의미.

 

또한 국가가 “부당한 적(unjust enemy)”을 상대로 싸울 때는 양적인 한계(얼마나 많이, 얼마나 세게)는 없지만, 질적인 한계(수단의 정당성) 는 반드시 있다. 즉, 아무 수단이나 써서는 안 되며, 오직 도덕법과 인류의 평화를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만 싸워야 한다. 그러나 “부당한 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초에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국제사회는 아직 법이 없는 자연상태(state of nature)에 있기 때문에, 각 국가는 자기 판단으로 정의와 불의를 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한 적(just enemy)”이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내가 상대를 부당하다고 판단한다면 이미 그를 적으로 간주한 것이며, 반대로 그를 정당하다고 인정한다면 그는 더 이상 ‘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한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공적으로 드러난 의도나 행동이 만약 보편화되면 평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국가, 즉 조약을 어기거나 신뢰를 파괴하는 국가는 국제사회 전체의 자유를 위협하는 부당한 행위자로 본다. 이런 경우 다른 국가들이 연합해 그 행위를 제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영토를 나누거나 국민을 노예화하는 식의 응징은 또 다른 불의다. 국가는 범죄자가 아니라 정치적 인격체이며, 국민은 여전히 공동체를 이룰 원초적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칸트에게 전쟁의 목표는 상대의 파괴가 아니라 평화의 복원이며, 이는 도덕적 법칙과 결합된 국제법(법의 통치)에 의해만 정당화될 수 있다.

따라서 전쟁 후의 권리(ius post bellum) 와 평화의 권리(ius pacis) 에서 칸트는 승전국조차 도덕법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고 본다. 평화조약은 사면(amnesty) 을 내포해야 하며, 중립·보장·방위동맹의 권리가 포함된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여전히 법 없는 자연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러한 권리들은 모두 잠정적이다. 따라서 칸트는 국가들이 점진적으로 법적 연합체(연방적 회의체, congress) 를 구성하여 전쟁 대신 재판적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이를 영구평화를 향한 “도덕적·법적 진보의 의무이자 과제”로 제시하며, 비록 완전한 세계국가는 불가능하더라도, 그것을 향한 지속적 접근만은 실천적 의무로 남는다고 결론짓는다.

(2) Cosmopolitan Right


칸트가 말한 세계시민법(cosmopolitan right) 은 인류 전체가 지구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모든 민족이 서로 평화롭고 보편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단순한 인도주의적(윤리적) 원칙이 아니라, 법적 원칙에 속한다.

자연은 인간 모두를 지구라는 구형의 한정된 공간(globus terraqueus) 안에 함께 살도록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모든 민족은 본래 ‘공동의 지구’에 대한 원초적 권리를 공유한다. 이 권리는 토지의 공동소유권(communio) 나 실제의 사용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서로 물리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동체(communio commercii) (상호 교역과 접촉을 시도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타국과 평화롭게 교류를 시도할 권리를 가지며, 이런 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가 그것을 적대행위로 간주할 권리는 없다. 이처럼 보편적 교류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법, 곧 모든 민족이 보편적 교류를 전제로 맺어야 할 법이 바로 세계시민법(ius cosmopoliticum) 이다.

다만 이 권리는 단순히 여행하거나 교류를 시도할 자유이지, 타국의 땅에 거주하거나 점유할 권리는 아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반드시 상호 동의와 명시적 계약이 필요하다.

칸트는 이러한 원칙에 따라 식민지 개척과 강제 점유에 대한 생각도 덧붙인다. 만약 그 지역이 비어 있거나 서로 간섭하지 않는 거리라면 정착이 가능하지만, 목축민이나 수렵민들(예: 호텐토트, 퉁구스, 북미 원주민 등) 이 생계를 위해 넓은 땅을 필요로 하는 경우, 그들의 동의 없는 점유는 부당한 폭력이다. 또한 그들의 무지를 이용한 불공정한 계약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 “미개한 민족을 문명화한다”, “부패한 인간들을 식민지로 보내 교화시킨다”는 정당화는 ‘수단의 불의(injustice in the means)’ 다. 따라서 ‘일시적 불의로 영구적 정의를 세울 수 있다’는 논리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3) 결론

칸트는 영구평화가 현실적으로 실현될지, 혹은 단지 이상에 불과한지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을 믿고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 이성의 명령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영구평화를 단순한 이론적 가정이 아니라 실천적 원리로 삼아야 하며,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그 불가능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그 이상에 따라 행동할 의무가 있다.

도덕적 이성은 우리에게 “전쟁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며, 개인 간이든 국가 간이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폭력에 호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문제는 평화가 ‘현실적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이다. 칸트에게 이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행동해야 할 도덕적 책무(duty) 이며, 도덕법 자체를 기만으로 여긴다면 인간은 이성을 버리고 단지 자연의 기계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나아가 그는 영구평화의 확립이 단순히 공법의 일부가 아니라, 이성에 따른 법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본다. 평화 상태에서만 다수의 인간이 함께 살아가며 ‘너의 것’과 ‘나의 것’을 법 아래에서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헌정 질서는 역사적 경험이나 관습에서가 아니라, 이성이 제시하는 정당한 사회의 이념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인간이 아니라 법이 통치하는 나라가 가장 좋은 나라다”라는 말이 바로 이러한 형이상학적 이상이다. 다만 칸트는 이 이념의 실현이 폭력적 혁명이나 급진적 전복을 통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대신, 그는 점진적 개혁과 원칙에 따른 개선을 통해 국가들이 끊임없이 영구평화의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인간 사회가 이성에 따라 꾸준히 도덕적·정치적으로 진보해가는 과정 자체가 의무이자 희망이라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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