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기구-비공식기구의 스펙트럼
Felicity Vabulas & Duncan Snidal, Organization without delegation: Informal 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s (IIGOs) and the spectrum of intergovernmental arrangements
이 논문은 기존 국제기구 연구가 조약과 상설 사무국을 갖춘 공식 국제기구(Formal IGOs)에만 초점을 맞춰왔다는 한계를 지적하며, 국가들이 왜 때로는 비공식 국제기구(Informal IGOs)를 선택하는지를 설명한다. G7·G20·BRICS·AOSIS 같은 사례에서 보듯, 비공식 기구는 위기 상황에서 빠른 대응과 유연성, 주권 침해 최소화, 관료주의 회피, 정보 통제 유지 등의 장점을 제공한다. 반면 복잡하거나 논쟁적인 사안에서는 낮은 제도화 수준이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협력을 단순히 “무제도적 협력 대 공식기구”의 이분법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제도화 수준의 연속선(spectrum) 속에서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선택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러한 선택이 권력 비대칭이나 불확실성 상황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탐구한다.
IIGO(비공식 국제기구)는 국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협력하지만, 조약·상설 사무국·법적 구속력 없이 운영되는 느슨한 형태의 국제기구이다. 회원국은 상호 인식에 기반해 참여하며, 회의는 필요에 따라 열리고 정상급 비공식 대화를 통해 신속한 조율과 신뢰 형성이 가능하다. 사무국 대신 순환의장제가 행정 기능을 담당하며, 독립적 권한을 위임하지 않음으로써 중앙기구의 자율적 행동을 통제한다. 이러한 ‘위임 없는 조직화(organization without delegation)’는 유연성과 주권 보호를 가능하게 하지만, 복잡한 사안 처리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 논문은 국가 간 제도적 협력 형태를 ‘비공식적(IIGO)–공식적(FIGO)’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정부 상태에서 출발해, 비공식 규범, 외교적 협의체, IIGO, FIGO, 초국가기구로 이어지는 스펙트럼 속에서 국가들은 상황에 따라 제도화를 선택한다. IIGO는 명시적 목적을 공유하고 정기적 회의를 가지지만, 조약·사무국·법적 구속력은 없는 중간 단계의 협력 형태로, 유연성과 신속성을 갖되 제도적 구속이 약하다.
IIGO를 식별하기 위한 핵심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회원국들이 공동의 목적을 명시적으로 인식하고 성명서나 보고서로 표현한다. 둘째,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지만 상설 사무국을 두지 않고, 필요에 따라 순환의장제나 기존 기구의 지원을 활용한다. 셋째, 회의는 고정된 주기가 아니라 ‘다시 만날 것’이라는 암묵적 지속성을 전제로 한다. GATT처럼 IIGO가 시간이 지나 FIGO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이는 국제제도의 변화가 단절적 사건이 아니라 점진적 과정임을 보여준다.
Slaughter(2004)의 초국가적 네트워크나 Haftel(2012)의 지역경제기구 연구와 교차 비교하여 총 51개의 IIGO를 확인했지만, 완전한 목록은 아니다. 비공식성 탓에 IIGO는 FIGO보다 쉽게 사라지고, 설립·소멸 시점을 명확히 특정하기도 어렵다. 또한, 데이터는 문서화된 공식적 특성이 있는 기구에 편향되어 상대적으로 “더 형식화된 IIGO”와 “최근·공개된·규모가 큰 기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은 이 목록이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IIGO들을 충분히 포괄한다고 본다.
IIGO는 환경·경제·핵 비확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회원국 수는 2개에서 131개까지 폭넓다. 지역적·구성적 다양성이 크고, 일부는 수십 년 동안 유지되지만 다른 일부는 단기간에 해체되거나 FIGO로 발전한다(GATT 사례 등). 반면, 단발성 회의나 비국가 행위자 중심 네트워크(예: World Economic Forum, Egmont Group)는 IIGO로 분류되지 않는다. 최근 들어 FIGO의 증가세가 정체된 반면 IIGO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FIGO를 대체한다기보다 새로운 제도적 대안으로서의 IIGO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후 논문은 국가들이 왜 IIGO를 선택하는지 여섯 가지 제도적 “트레이드오프”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IIGO는 국가들이 ① 구속력 있는 합의보다 유연성을 유지하고, ② 불확실성과 분배 갈등이 클 때 위험을 분산하며, ③ 단기적 위기 대응에서 속도와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호된다. 반면 FIGO는 장기적 안정성, 법적 구속력, 제도적 일관성 면에서 강점을 가진다.
국가들은 공식기구(FIGOs)보다 비공식 정부간기구(IIGOs)를 선택함으로써 유연성, 자율성(sovereignty autonomy), 신속성(speed), 비용 절감(lower transaction costs), 정보 통제(control of information), 위기 대응력(crisis management capacity) 등의 이점을 얻는다. IIGO는 조약이나 상설 사무국(permanent secretariat)이 없기 때문에 구속력(binding commitment)이 약하지만, 불확실성이 높거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예컨대 G20 정상들의 비공식 전화회의나 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과 같은 IIGO는 느슨한 조율(loose coordination)과 협력(cooperation)을 가능하게 하며, 위기 시 빠른 의사결정을 돕는다. 반면 FIGO는 장기적 안정성(long-term stability)과 제도적 일관성(institutional consistency)에서 우위를 갖는다. 결국 두 형태는 상호 대이라기보다 **상호보완적(complementary)이며, 국가들은 문제의 성격(issue characteristics)에 따라 IIGO와 FIGO를 병행(combine)하거나 조합(hybridize)해 활용한다.
또한 IIGO의 선택은 국제 권력구조의 변화(changes in the international distribution of power)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존의 패권국(hegemonic powers)은 FIGO 내부의 비공식 규범(informal governance within FIGOs)을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는 반면, 신흥국(rising powers)은 자신에게 불리한 제도 질서(formal institutional order)를 우회하거나 재조정(rebalance)하기 위해 IIGO를 활용한다. BRICS나 Cairns Group, G-33과 같은 협의체는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IIGO를 통해 협상력(bargaining power)을 확대하고 제도적 불균형(institutional asymmetry)을 완화하려 한다. 따라서 IIGO는 단순한 임시 협의체(ad hoc forum)가 아니라, 권력 변화에 적응(adapting to power shifts)하며 제도 질서를 재편(reconfiguring institutional order)하는 전략적 조정 메커니즘(strategic adjustment mechanism)으로 기능한다.
저자들은 화학·생물무기(CBW) 분야에서 서로 다른 제도화 수준을 가진 두 기관인 Australia Group (AG), 공식기구인 Organization for the Prohibition of Chemical Weapons (OPCW)를 비교하여, 국가들이 어떤 조건에서 비공식 혹은 공식 제도를 선택하는지를 보여준다.
AG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화학무기 사용이 드러난 뒤, 15개국이 수출통제 협력을 위해 설립한 IIGO로, 현재 41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AG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공동 통제 목록(common control list)’을 통해 회원국 간 기대를 조정하고, 상설 사무국 없이 연례회의만 개최한다. 반면 OPCW는 1997년 Chemical Weapons Convention (CWC)을 이행하기 위한 정식 국제기구로, 회원국의 화학무기 폐기 및 비확산을 법적으로 감독하며, 독립된 기술사무국(Technical Secretariat)을 갖추고 공식 투표 절차를 운영한다.
두 기관의 차이는 저자들의 가설을 잘 뒷받침한다. AG는 유연성(flexibility), 주권 유지(sovereignty autonomy), 정보 통제(control of information), 속도(speed), 관료주의 최소화(minimal bureaucracy), 불확실성 대응(managing uncertainty) 등에서 강점을 가지며, 소수의 신뢰 기반 국가들이 신속히 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반면 OPCW는 법적 구속력(binding commitment), 집단적 감독(collective oversight), 정보 공유(transparency), 장기적 집행 효율성(long-term implementation efficiency), 관료적 안정성(bureaucratic stability)을 제공하며,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을 포괄한다. 따라서 두 조직은 상호보완적이며, AG는 ‘선별적 클럽(selective club)’ 형태로 공급국 간 기준을 설정하고, OPCW는 보편적 참여(universal participation)를 통해 규범을 집행한다.
AG는 서방 선진국 중심의 동질적 국가들이 주도하여 의제를 설정하고, OPCW 내 논의 방향에도 비공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반면 비회원 개발도상국들은 AG가 과도하게 배타적이라 비판한다. 그럼에도 AG 회원국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CWC 및 Biological and Toxin Weapons Convention (BTWC)의 목표와 상보적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IIGO는 냉전 이후 국제 거버넌스의 주요 형태로 부상하였으며, 강대국은 이를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고, 약소국은 공식기구에서의 불리한 결과를 보완하기 위해 활용한다. IIGO와 FIGO가 중첩된 이러한 다층적 협력체계는 Haas(2010)가 말한 “혼란스러운 다자주의(messy multilateralism)”를 형성하고 있으며, 21세기에도 계속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저자들은 IIGO 연구가 단순히 비공식 포럼이 아니라, 국제 제도화의 스펙트럼(spectrum of institutional formalization)을 이해하고, 국가 간 권력과 분배의 역학(power and distributional dynamics)을 분석하는 데 필수적임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