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IMF 내 기후 의제의 확산 경로

Climate Cascades: IOs and the Prioritization of Climate Action,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68, No. 4, October 2024, Pp. 1299–1314

Oct 30, 2025
IMF 내 기후 의제의 확산 경로

기후변화는 오늘날 빠르게 국제정치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나 파리협정과 같은 전담기구의 활동을 넘어선다. 본래 기후와 직접 관련이 없던 국제기구들—세계무역기구(WTO), 국제결제은행(BIS),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점점 더 기후정책을 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다. WTO 사무총장은 “무역의 힘을 환경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고 언급했고, BIS는 “기후 관련 금융위험(climate-related financial risks)”을 공식 경고했으며, 세계은행은 2010년대 후반 기후 프로젝트 대출 확대 계획을 발표하면서 “기후변화는 개발 노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또한 기후변화를 “우리 시대의 실존적 도전”이라 규정하며 탄소세 도입과 화석연료 보조금 철폐를 촉구했다.

이러한 기후 의제의 급격한 확장은 역설적으로 국제사회의 야심찬 기후협약이 난항을 겪고 있는 현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IMF나 세계은행은 전통적으로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 강대국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들 기관은 회원국 간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후문제에 대한 관여를 강화해 왔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외부 정치적 압력이나 권력자 의지 변화로 설명하기보다, “내부적 요인(endogenous factors)”, 즉 국제기구 내부 관료들의 학습(learning)과 순환(rotations)에서 비롯된 결과로 해석한다. 즉, 제도적 변화의 동력은 상층부의 명령이 아니라, 중·하위 관료층의 경험과 인식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IMF나 세계은행의 관료들은 각국에 파견되어 정책 감시 및 집행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특히 기후 취약성이 높은 국가에서 근무하며 기후 피해를 직접 경험함으로써 기후변화가 경제 안정과 성장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그들이 다른 국가나 상위 직위로 이동하면서 수평적·수직적으로 확산된다. IMF의 사례를 중심으로 보면, 저자들은 2000년부터 2018년까지의 Article IV 보고서(회원국 경제감시 보고서)를 전수 분석하여 IMF가 기후 문제를 점점 더 자주 다루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분석 결과, IMF 직원들이 현지에서 기후재해를 직접 경험한 후에는 보고서에서 기후 위험을 언급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이러한 인식은 다른 국가로 이동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연구의 핵심은,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는 동력이 외부의 정치적 요인이 아니라 내부의 학습 과정이라는 점이다. 즉, IMF의 기후 의제 확장은 “회원국의 요구”나 “총재의 지시” 때문이 아니라, 현장 경험을 통해 형성된 관료들의 학습 효과(bottom-up learning) 덕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생적 제도 변화(endogenous institutional change)는 특히 강대국 간의 기후 분열로 상층부 통제가 약화된 환경에서 더 쉽게 나타난다. IMF 내부에서 기후리스크가 “거시경제적 핵심 이슈(macro-critical issue)”로 격상된 것도 바로 이러한 관료들의 경험 축적과 인식 전환의 결과로 해석된다.

저자들은 이 논지를 검증하기 위해 두 가지 실증 모형을 제시한다. 첫 번째 모형은 **“기후재해 경험이 기후 언급 행동을 유발하는가”**를 살펴본다. 종속변수는 IMF 관료 it 시점까지 보고서에서 기후를 언급했는지를 나타내는 이진 변수이고, 주요 독립변수는 그 관료가 근무한 국가에서 t-1까지 경험한 누적 기후재해 수이다. 국가의 GDP, 민주주의 수준(Polity 점수), IMF 프로그램 참여 여부, 미국과의 정치적 거리 등 다양한 통제변수가 포함되며, 개인별 고정효과(ζᵢ)와 연도별 고정효과(ηₜ)를 도입해 개인 성향과 전 세계적 추세(예: 파리협정 이후 분위기)를 통제한다. 분석 결과, 기후재해가 1 표준편차(약 8.2건) 증가할 때 기후 언급 확률이 3~4 %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다(β≈0.004–0.005, p<0.05).

이 결과는 동일한 관료가 다른 시점에 기후재해를 겪었을 때 보고서에서 기후를 언급할 가능성이 증가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현장 경험을 통한 학습 효과(learning effect)가 행동 변화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모형은 “그 인식이 조직 내에서 확산되는가”를 분석한다. 단위는 국가-연도이며, 종속변수는 특정 연도의 IMF Article IV 보고서에 기후 관련 언급이 있었는가(0/1)이다. 핵심 설명변수는 해당 국가에 파견된 상주대표(resident representative)가 과거 다른 국가에서 이미 기후를 언급한 적이 있는지 여부다. 분석 결과, 기후민감형 관료가 있을 경우 해당 국가 보고서에 기후 관련 언급이 포함될 확률이 10~14 %포인트 증가했다.

이 두 결과를 종합하면, IMF 관료가 기후재해를 경험할수록 기후변화를 경제 분석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게 되며, 이러한 인식은 다른 국가로 이동한 후에도 끈질기게(sticky) 유지되어 조직 전체로 확산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IMF의 기후 의제 확장은 상향식(bottom-up) 학습과 순환 근무(rotations)를 통한 내생적 제도 변화의 결과다.

기후변화는 이제 IMF나 세계은행 같은 전통적인 경제·금융기구의 분석 프레임을 바꾸고 있다. 이 연구는 국제기구 정책결정의 동력을 외부 압력에서 찾기보다, 관료들의 현장 경험·학습·이동이라는 미시적 과정에서 찾음으로써 국제기구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기존의 ‘단절적 균형모형(punctuated equilibrium)’이 외생적 충격에 주목했다면, 본 연구는 일상적인 행정 관행과 경험이 제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IMF의 기후 의제 확장은 “기후를 본 사람들”의 학습이 “기후를 말하는 조직”으로 이어진, 가장 미시적인 수준의 제도적 진화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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