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종속이론과 제국주의

Galtung, J. 1971. A Structural Theory of Imperialism. Journal of Peace Research 8(2):59-94.

Oct 22, 2025
종속이론과 제국주의

이 이론은 오늘날 세계의 두 가지 뚜렷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첫째, 인간의 생활 조건 전반 — 경제적 자원, 정치적 권력, 사회적 기회 등 — 에서 국가 간 및 국가 내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둘째, 이러한 불평등이 쉽게 변하지 않고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중심부(Center)와 주변부(Periphery) 국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국가 내부에도 또 다른 중심과 주변이 존재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이러한 불평등이 발생하고 유지되는 메커니즘, 특히 ‘중심 속의 중심’과 ‘주변 속의 주변’ 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이를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의 한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다. Galtung은 제국주의를 단순히 군사 점령이나 직접적 지배로 보지 않고, 집단 간의 복잡한 지배 관계, 즉 중심국의 중심이 주변국의 중심과 결탁해 형성하는 체계적 지배 구조로 본다. 그는 전통적인 마르크스-레닌식 제국주의론(경제적 팽창욕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지배)을 비판하며, 제국주의를 경제·정치·문화가 얽힌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지배 구조로 재정의한다.

— 생활조건의 차이가 자꾸 벌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핵심 명제


이론의 핵심은 ‘이익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 개념이다. 이는 두 행위자(또는 집단)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생활조건(Living Condition, LC) 에 영향을 주는데, 그 격차가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될 때를 의미한다. 반대로 그 격차가 줄어드는 경우를 ‘이익의 조화(harmony of interest)’라 부른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가 존재한다고 해서 이익의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집단이 실제로 상호작용(coupling) 하고 있을 때만 충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 국가의 정부(중심)가 자국의 국민(주변)보다 훨씬 빠르게 부를 축적해 그 격차가 커진다면, 이는 내부적 ‘이익의 불화(disharmony of interest)’이며, 그 정부는 정당성을 잃게 된다. 또한 단순히 불평등이 ‘유지’되는 경우도 조화가 아니라 불화의 평형 상태로 간주된다. Galtung은 이 개념이 평등이라는 가치 전제에 기반하고 있음을 명시한다 — 즉, 상호작용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면 이는 약자의 이익에 반하는 ‘구조적 비조화’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Galtung은 제국주의를 중심국의 중심(center in the Center)주변국의 중심(center in the Periphery)공동의 이익(harmony of interest) 을 형성하며, 그 결과 주변국 전체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구조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중심국의 중심은 주변국의 중심을 ‘교두보(bridgehead)’ 로 삼아 자원을 흡수하고, 그 대가로 주변국의 중심에게 일정한 이익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가치 이전(value transfer)’을 중개하는 전달 벨트(transmission belt) 역할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주변국 내부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주변국의 주변은 더욱 가난하고 분열된다. 반면 중심국 내부에서는 복지 정책 등을 통해 일정 부분 불평등이 완화되며, 이로 인해 중심국은 더욱 통합되고 안정된다. Galtung은 이 구조를 “국가 간 불평등과 국가 내부 불평등이 결합된 복합 지배 체계”로 규정하며, 이러한 제국주의가 단순한 군사 점령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정교한 형태임을 강조한다. 즉, 가장 “성숙한 제국주의”는 총과 군대가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상호작용 속에 내재된 비대칭 구조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단계
시기
형태
명칭
I
과거
점령과 이주(occupation)
식민주의(colonialism)
II
현재
제도화된 조직을 통한 지배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
III
미래
즉각적 통신 네트워크를 통한 간접 지배
신-신식민주의(neo-neo-colonialism)


갈퉁은 제국주의를 단일한 현상이 아닌 경제·정치·군사·통신·문화적 지배가 결합된 복합 구조로 설명한다. 정치적 제국주의에서는 ‘모국(mother country)’이라 불리는 중심국이 의사결정권을 독점하고, 주변국은 단지 복종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기술원조나 제도 수입을 통해 제도적 종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군사 영역에서는 “트랙터를 만드는 자가 탱크도 만든다”는 비유처럼, 중심국은 산업·기술력을 무력으로 전환시켜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주변국은 원자재와 병력을 제공하며 의존한다. 통신 제국주의는 정보 흐름과 기술 격차를 통해 작동한다. 중심국은 최신 통신·운송 수단을 독점하고, 주변국은 구식 기술에 머물러 “정보 소비자”로 전락한다. 나아가 뉴스의 생산과 해석 방식조차 중심국의 시각에 의해 구조화되며, 주변국 기자들은 중심의 시선을 학습하도록 길들여진다. 마지막으로 문화 제국주의는 중심이 지식을 ‘가르치는 자’, 주변이 ‘배우는 자’로 고정되는 교육·학문 체계를 통해 작동한다. 중심국의 학자들이 주변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론화와 출판은 중심에서 이루어지는 ‘지식의 분업 구조(scientific imperialism)’가 그 전형이다.

갈퉁은 제국주의의 역사적 발전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째, 식민주의(colonialism) 단계에서는 교통·통신의 한계로 인해 중심국이 물리적으로 주변국을 점령하고 이식하는 형태였다.(2차 세계대전의 종료로 식민주의는 끝) 둘째,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 단계에서는 증기기관과 통신의 발달로 직접 지배 대신 제도적 지배가 가능해졌다. 중심국의 중심과 주변국의 중심이 국제기구나 다국적 기업을 매개로 결탁하며, 정치·경제·문화의 불평등을 제도화했다. 셋째, 신-신식민주의(neo-neo-colonialism) 단계에서는 국제기구조차 불필요해지고, 즉각적 통신(instant communication)을 통해 중심 엘리트들이 직접 연결되는 네트워크형 제국주의가 등장한다. 여기서 제국주의는 물리적 점령이 아니라 비가시적이고 자동화된 상호 연결 구조, 즉 “구조적 통제(structural control)”로 진화한다. 중심 엘리트들은 공식 제도를 거치지 않고도 상호 조정하며, 제국주의는 더욱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갈퉁은 제국주의의 다섯 유형이 서로 전환(convertibility) 가능하다고 본다. 정치적 제국주의는 무역 조건을 조정해 경제적 제국주의로, 군사적 제국주의는 통신망의 중앙집중화를 통해 통신 제국주의로, 통신 제국주의는 정보 흐름 통제를 통해 문화 제국주의로, 그리고 문화 제국주의는 기술원조나 교육훈련을 통해 경제적 제국주의로 바뀔 수 있다. 이처럼 각 유형은 ‘스핀오프(spin-off)’와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를 통해 상호 강화된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단일 원인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경제·정치·군사·문화가 상호 피드백을 이루는 통합적 체계다. 이 모든 요소가 완벽히 작동할 때 생기는 것이 ‘완전한 제국주의(perfect imperialism)’이다. 완전한 제국주의는 중심국 내부의 평등과 주변국 내부의 불평등이 공존하며, 모든 교환 영역에서 수직적 분업과 봉건적 네트워크가 완비된 상태다. 이때 폭력은 물리적 형태가 아닌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으로 나타나며, 제국주의의 균열이 생길 경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직접적 폭력(direct violence) 이 활성화된다.

구조적 변화의 필요성과 기본 방향

갈퉁은 제국주의를 단순한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의 격차’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 격차가 단순한 분배 문제가 아니라 ‘지배적 구조(structure of dominance)’의 문제라고 본다. 따라서 부자에게서 가난한 자로의 재분배만으로는 구조적 폭력을 줄일 수 없으며, 국제적·국내적 구조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는 국제적 수준(국가 간)과 국내적 수준(국가 내부의 중심과 주변)에서 동시에 작동하므로, 두 수준 모두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국제적 차원의 구조변화 전략

갈퉁은 제국주의의 작동 원리를 ‘반(反)메커니즘’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국제 전략을 제시한다.

1️⃣ 수평화(Horizontalization) –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수직적 분업에서 수평적 교류로 바꾸는 것이다.

  • 주변국이 단순 원자재가 아니라 가공제품을 수출하도록 하고,
  • 중심국은 가공품 수입과 부문 간 교역(intra-sector trade) 으로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
  • 만약 평등한 교환이 불가능하다면 ‘탈결합(decoupling)’, 즉 자립을 택해야 한다.
  • 궁극적으로 주변국은 자립(self-reliance) 을 통해, 중심국이 만들어놓은 소비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생산체계를 정의해야 한다.

2️⃣ 탈봉건화(Defeudalization) – 주변국 내부에서 중심-주변 간의 종속 관계를 해체하는 것이다.

  • 주변국 간의 수평적 교역망 구축(예: 반가공품, 원자재 간 교환)을 통해 서로의 자립을 강화하고,
  • 이를 기반으로 국제적 연대조직(예: 비동맹국 회의, Group of 77 등)을 만들어 중심국의 정책 변화를 압박해야 한다.
  • 이러한 조직은 필요할 경우 ‘원자재 파업(raw materials strike)’ 과 같은 수단으로 중심국에 구조개혁을 요구할 수도 있다.

3️⃣ 다자화(Multilateralization) – 기존의 비대칭적 다국적 기구(MNC, IMF, WB 등)를 대칭적 조직으로 바꾸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주변국이 철수해야 한다.

  • 주변국은 자체적으로 대칭적 다국적 연합체를 설립해 중심국에 의존하지 않고도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 더 나아가 글로벌 통신망과 생산망의 민주화—즉 ‘주변의 주변(periphery of the periphery)’까지 접근 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4️⃣ 초블록 활동(Extra-bloc Activity) – 냉전식 블록 질서에 종속되지 않고, 주변국들 간 혹은 다양한 중심과의 관계를 다변화(diversification) 해야 한다.

  •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과 같은 제3세력 네트워크는 아직 약하지만, 향후 국제 체제의 수평화를 위한 모델이 될 수 있다.

국내적 차원의 구조변화 전략

갈퉁은 동일한 논리를 국가 내부의 중심(c)–주변(p) 관계에도 적용한다. 즉, 한 국가 안에서도 ‘국내의 중심(엘리트)’이 ‘국내의 주변(민중)’을 착취하는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그는 이를 세 가지 방향으로 제시한다.

1️⃣ ‘중심 간 조화의 축소(Reduced Harmony between Centers)’ – 주변국 내부 엘리트(cP)가 중심국 엘리트(cC)와의 결탁을 끊거나, 그 관계가 악화될 때 주변은 자율성을 얻게 된다.

  • 예: 제2차 세계대전 중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유럽 중심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사례.
  • 중심 간 불화가 커질수록 주변이 정치적 독립을 획득할 여지가 생긴다.

2️⃣ ‘주변 내부의 불화 감소(Reduced Disharmony in the Periphery)’ – 주변국 내부의 불평등을 제거하는 전략.

  • (a) 폭력혁명: 내부 엘리트를 물리적으로 제거하거나 추방하여 새로운 체제를 수립.
  • (b) 비폭력혁명: 엘리트를 사회적으로 고립시켜 기능을 잃게 하고,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부여.
  • (c) 주변 간 연대: 인민 주도의 외교, 시민 네트워크를 통해 하향식 의존 구조를 대체(예: OSPAAAL 같은 반제 운동).

3️⃣ ‘중심 내부의 변화(Changes in the Center)’ – 중심국 내부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

  • (a) 불화의 증가: 중심국 내부의 주변층(pC)이 엘리트(cC)에 반대해 국제 주변과 연대할 경우.
  • (b) 목표의 변화: 중심국이 스스로 제국주의 정책을 중단하고, 성장 대신 정의(justice) 를 우선시할 경우.
  • 중심국 내부의 ‘반중심(anti-center)’ 운동—예: 생태·노동운동—이 제국주의 붕괴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

이론의 실천적 의미

갈퉁은 이 이론이 단지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전략적 지침(strategy for change) 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론이 단순히 “현재의 현실(data)”에 대한 가설 검증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잠재적 현실(potential reality)”—즉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목표—에 대한 정책 실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따라서 ‘A Structural Theory of Imperialism’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제국주의는 구조적 폭력이며, 그 극복은 재분배가 아니라 구조적 수평화(horizontalization)와 탈봉건화(defeudalization)라는 이중 전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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