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의 비판문화
Why International Organizations Don’t Learn: Dissent Suppression as a Source of IO Dysfunction
이 논문은 국제기구들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를 단순히 제도나 정치적 요인에서 찾지 않고, 조직 내부의 ‘비판문화(criticism culture)’에 주목한다. 르완다 학살 당시의 유엔, 에볼라 사태의 WHO, 환경파괴에 연루된 세계은행 등은 모두 국제기구의 조직학습 실패(organizational learning failure)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수십 년간 국제기구들은 ‘교훈 학습 보고서(lessons-learned studies)’나 내부평가 제도 등 학습 인프라를 구축해왔지만, 여전히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저자는 그 원인을, 조직 구성원들이 내부에서 자유롭게 비판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억압적 문화에서 찾는다. 유엔, 세계은행, EU 등에서 직원들이 내부 문제를 감히 지적하지 못하거나 자기검열을 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관찰된다. 이러한 ‘비판 억압 문화(repressive criticism culture)’는 공식적인 학습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을 막는다. 즉, (1) 비판적 의견이 학습 채널에 전달되지 않는 ‘선택적 입력’, (2) 학습을 통해 얻은 통찰이 상부로 전달되지 않거나 왜곡되는 ‘선택적 출력’이라는 ‘이중 학습 봉쇄(double learning blockade)’가 발생해, 조직의 개선과 변화가 저해된다.
결국 논문은 “모든 국제기구가 동일하게 억압적이지는 않지만, 내부 비판이 억눌리는 조직은 예외 없이 학습 결핍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제도적 학습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비판을 안전하게 제기할 수 있는 열린 조직문화(open criticism culture)가 구축되어야 진정한 학습과 성과 향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근 국제기구(IOs)의 성과와 개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자들은 조직학습(organizational learning)이 IO의 내부 효율성과 성과 향상에 핵심적이라는 점에 주목해왔다. 기존 연구들은 주로 제도적 설계나 구조적 요인—예컨대 회원국 간 선호 차이, 학습 절차, 공식화된 평가 제도 등—에 집중했으며, 이러한 형식적 학습 인프라(formal learning infrastructure)가 새로운 아이디어 도입이나 적응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리더십과 조직문화, 특히 ‘내부 비판문화(criticism culture)’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최근 연구들은 공식 구조만으로는 학습이 보장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NATO나 EU의 사례에서, 리더들이 실수나 문제점을 보고하는 것이 위험하거나 불이익으로 인식되는 조직문화가 존재하며, 이러한 ‘체면 유지 문화(face-saving culture)’가 학습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본 논문은 단순히 제도적 측면을 넘어, 일선 직원들의 행위와 조직 내 비판의 처리 방식—즉, ‘아래로부터의(bottom-up)’ 학습—에 주목한다. 이는 국제기구 학습 연구의 범위를 구조와 리더십을 넘어 문화적·행위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시도다.
저자는 특히 국제기구 내부의 비판문화를 두 가지 이상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개방적·권장적(permissive-encouraging) 문화에서는 비판이 자유롭게 제기되고 지도부가 이를 수용하며 문제 해결에 반영한다. 반면, 억압적·회피적(repressive-discouraging) 문화에서는 비판이 숨겨지거나 처벌되고 문제는 축소된다. 이러한 억압적 비판문화는 학습 인프라가 작동하는 것을 방해하며, 비판이 내부적으로 순환되지 못해 조직학습의 실패와 기능장애(IO dysfunction)로 이어진다고 논문은 주장한다
비판문화와 조직학습 (Criticism Culture and Organizational Learning)
비판은 학습에 필수적이다. 일상적으로 비판과 갈등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사회이론가 Jaeggi(2014)가 말하듯 비판은 사회 구조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이성에 기반한 추진력(reason-based push)”으로 볼 수 있다. 조직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내부 비판이 반드시 필요하며(Edmondson 2019), 구성원 간의 건설적 갈등(constructive conflicts)과 내부 반대의견(internal dissent)은 조직의 자기갱신(self-renewal)을 가능하게 한다(Wimmer 2001). 조직학습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지식의 획득–해석–제도화 과정을 통해 조직의 규칙과 관행을 바꾸는 일이며, 그 출발점이 바로 내부 비판이다. 오류와 실패를 인식하지 못하면 학습은 시작될 수 없고, 따라서 내부 비판은 학습의 “점화 장치”로서 기존의 전제와 관행을 흔들어 조직의 변화를 유도한다.
그러나 억압적 비판문화(repressive criticism culture)에서는 이러한 학습의 흐름이 왜곡된다. Meyer et al.(2024)이 제시한 여섯 단계의 IO 학습 과정 가운데, 비판문화는 특히 2~4단계—정보 수집(information collection), 교훈 도출(identification of actionable lessons), 교훈 확산(diffusion of lessons)—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조직 내에서 비판 제기가 금기시된다면, (1) 현장의 문제 정보가 수집되지 않고, (2) 토론이 제한되며, (3) 결과가 상부로 전달되지 않아 학습이 정체된다. 따라서 비판을 억압하는 문화는 조직의 비판적 성찰 능력을 떨어뜨리고(Alvesson & Spicer 2012), 공식적 학습 인프라(formal learning infrastructure)를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인 구조로 만든다. 결국, 아무리 정교한 제도적 학습 시스템을 갖춰도,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조직에서는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국제기구(IOs)는 실수를 반복하고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구조적 병리를 보인다(Barnett & Finnemore 2018). 구성원들이 상급자의 판단을 반박할 수 없고, 불편한 질문을 피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조직은 과거의 오류를 재생산한다. 즉, 내부 비판을 억제하는 문화는 조직학습의 결핍을 낳고, 그 결과로 국제기구의 기능장애(IO dysfunction)를 초래한다. 다만 저자는 비판이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덧붙인다. 과도한 내부 갈등은 조직 안정성과 평판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중요한 것은 비판을 완전히 억누르거나 방임하지 않고, 학습을 위한 건전한 수준의 비판 허용 문화를 조성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유엔 사무국의 억압적이고 자기검열적인 내부 비판문화는 조직학습을 근본적으로 방해한다. 사무국은 르완다와 스레브레니차 사태 이후 다양한 형식적 학습 인프라(After-Action Review, Lessons Learned Study 등)를 구축했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이 비판을 제기하기 어렵다. 인터뷰에 따르면, 비판은 “비공식적 소모임”에서만 공유되고, 공식 보고서에는 성공사례 중심의 내용만 담긴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나 개인·부대 성과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며, 이로 인해 학습 과정의 입력 단계(selective input)가 심각하게 제한된다.
설령 내부 비판이 공식 채널을 통해 제기되더라도, 상부 보고 과정에서 내용이 삭제되거나 “백색세탁(whitewashing)”되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보고서는 상위 부서로 올라가면서 비판적 문구가 줄어들고, 최종적으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성공 서사”만 남는다. 이로 인해 학습체계의 출력 단계(selective output) 또한 왜곡되며, 실수의 원인 규명이나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유엔은 기술적 개선에만 머무는 단일고리 학습(single-loop learning)에 갇혀,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내부 비판 억압이 국제기구 전반의 학습 부재와 기능장애(IO dysfunction)를 설명하는 핵심 요인임을 밝힌다. 제도적 구조보다 문화적 요인이 더 중요하며, 새로운 학습 도구를 만드는 것보다 비판이 안전하게 제기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 리더십의 태도 변화, 인사 인센티브 개편, 그리고 회원국의 제도적 통제 완화가 필요하다. 결국 IO가 스스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를 억누르지 않고 학습의 자원으로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