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습법 (Customary International Law)의 변화
Pierre-Hugues Verdier, How Does Customary International Law Change? The Case of State Immunity (2015)
국제관습법은 국가들이 일정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그것을 법적 의무(opinio juris)로 인식할 때 형성되는 불문 국제법이다. 예를 들어 외교관 면제, 난민의 비송환 원칙, 영해 12해리 규칙 등이 대표적인 국제관습법 사례다.
이 논문은 국제관습법(Customary International Law, CIL)의 변화를 상호성(reciprocity)이 아닌 공동체적 선례효과(precedent effect)로 설명한다. 기존 이론은 CIL을 ‘눈에는 눈(tit-for-tat)’식 협력균형으로 이해했지만, CIL은 조약과 달리 제도적 보복 메커니즘이 없고 모든 국가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저자들은 국가들이 특정 상대국의 과거 행동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국가 공동체의 집단적 관행(state practice)을 기준으로 규범 준수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한 국가의 일탈은 단순한 위반이 아니라 규범 자체를 약화시키는 선례가 되므로, 국가는 단기 이익보다 규범의 지속성과 신뢰를 중시하게 된다.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저자들은 121개국의 국가면제(State Immunity) 전환 사례 (절대적 면제에서 상업적 행위에 대한 제한적 면제로의 변화) 를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상호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규범을 적용하지 않았으며, 주요 교역 상대국들이 새로운 규범을 채택할수록 자국도 이를 따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CIL이 직접적 상호성보다는 집단적 학습과 규범적 공유 이해(shared legal understandings)를 통해 변화함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이러한 관점이 합리주의적 접근과 구성주의적 접근을 연결하며, 국제관습법의 변화가 단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주권 개념과 국제 규범의 사회적 재해석을 반영한다고 결론짓는다.
국제관습법(CIL)은 국가들이 비슷한 행동을 계속 반복하고, 그것을 법적으로 해야 한다고 믿을 때 생기는 국제법이다. 조약처럼 서명하지 않아도 모든 국가에 적용되며, 바다의 12해리 영해나 외교관 면제 같은 규칙이 여기에 속한다. 새로운 문제(예: 사이버전, 우주개발)가 등장하면 관습법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조약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관습법은 조약처럼 위반 시 처벌하거나 보복할 제도가 없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는 상호주의”로 유지되기 어렵다. 대신, 한 나라가 규칙을 어기면 다른 나라들도 따라서 그 규칙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국가들은 규범이 무너지지 않도록 유의하여 행동한다. 이렇게 규칙이 조금씩 바뀌다 보면 새 관습이 생기고, 많은 나라가 받아들이면 나중에 조약으로 정식화되기도 한다.
성문화된 관습법도 여전히 관습법인가?
- 국제관습법은 원래 불문법이지만, 나중에 조약 형태로 성문화(codification) 될 수 있음
예: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은 외교관 면제라는 기존 관습법을 조약으로 명문화한 것.
- 하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관습법으로서 효력을 가지며, 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에도 적용 (즉, 조약은 단지 ‘기록’이고, 법적 근거는 여전히 관습법일 수 있음
관습법의 임계점은?
- 국제사법재판소(ICJ) 가 가장 중요한 판단자
예: North Sea Continental Shelf 사건 (1969)에서 ICJ는 “일반적이고 일관된 국가 관행 + 법적 확신(opinio juris)”이 있을 때만 관습법이 형성된다고 판시
- ICJ 판례, UN 국제법위원회(ILC) 보고서, 국가들의 공식 입장(statement), 법률 자문, 학자들의 연구 등이 종합적으로 참고되므로 명확한 기준선이 있는 건 아니고, 국제사회가 “이건 거의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고, 법적 의무로 여긴다”고 공감할 때 사실상 관습법으로 인정
주권면제 사례 분석 결과, 국가는 특정 상대국의 과거 행위보다 자신의 주요 교역국이나 주변국들의 전체적 움직임을 보고 제한적 면제로 전환했으며, 이는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주권 개념의 변화나 사회적 모방 같은 구성주의적 요인과도 맞물려 있었다. Verdier & Voeten의 ‘주요 교역국을 보고 결정한다’는 건 “상대에게 대응하는 tit-for-tat”이 아니라, “전체 규범 공동체 속에서 균형을 맞추는 행위”, 즉 규범 유지형 집단 조정(collective coordination) 에 가깝다. 그래서 그들은 이를 reciprocity가 아니라 precedent effect(선례 효과) 로 구분한다.
Verdier와 Voeten의 주권면제 연구는 겉으로는 국제관습법의 집단적 확산을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패권국의 규범 형성력(hegemonic lawmaking) 을 드러낸다. 국제관습법이 형식상 ‘모든 국가의 일반적 관행과 법적 확신’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미국처럼 영향력 있는 국가의 선례가 규범 변화를 이끄는 결정적 신호로 작용한다. 1952년 미국의 Tate Letter가 그 전환점이었으며,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행위를 “규범의 붕괴”가 아닌 “새로운 규범의 시작”으로 해석해 제한적 면제로 동조했다. 결국 이 변화는 상호주의적 보복의 결과가 아니라, 패권국의 행동에 대한 구조적 적응과 규범적 재정렬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정책 변경은 국영기업의 불공정한 이익과 국제 상업의 현실을 이유로 정당화되었고, 이후 영국·독일·프랑스 등이 뒤따르며 1980~2000년 사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러나 중국·러시아 등 일부 국가는 여전히 절대면제를 고수한다. ( 관행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반복적으로 일관되게 나타난다”면, 일부 예외가 있어도 관습법으로 인정됨. 즉, 보편성(universality) 이 아니라 일반성(generality) 이 중요)
회귀분석 핵심변수
- Export Market Diffusion (교역확산효과):
→ 주요 수출 상대국 중 얼마나 많은 나라가 제한적 면제를 채택했는지.
→ 많을수록, 자국도 그 규범을 따라갈 확률이 높음.
- Export/Import 비율:
→ 수출이 많은 국가는 “자국 기업이 해외에서 소송당할 위험”이 커서 절대면제를 유지하려 하고,
→ 수입이 많은 국가는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소송을 당하게 하려는” 유인이 커서 제한적 면제로 전환함.
- Major Importer (주요 수입국)(세계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나라)
→ 수입 비중이 크면 그 나라의 결정이 국제규범에 미치는 파급력이 커서, 선례효과를 고려해 조심스러움.
- Target (피소 경험):
→ 외국 법원에서 자국이 피소된 경험이 있을 때 제한적 면제로 전환하는지 확인했지만, 별다른 효과 없음 → 즉 “보복심리로 규범을 바꾸는 게 아님”이 입증됨.
대안적 확산 요인 (비교 변수들)
- Global Trend: 전 세계적인 추세.
- Contiguous States: 인접국가의 채택 여부.
- Colonial History: 과거 같은 종주국을 가진 국가들.
- Legal Origin: 같은 법체계를 가진 국가들(예: 영미법 국가끼리).
이 변수들은 효과가 일부 있지만, 가장 강력한 설명변수는 여전히 교역 파트너들의 규범 변화였어요.
통제 변수들
민주주의, 인권 관련 국제조약 참여, 사법 독립성, 정부 경제비중, 이념성향(UN 표결 데이터) 등을 통제했는데도 결과는 일관→ 정치체제나 이념보다 ‘경제관계망’과 ‘규범의 선례효과’가 훨씬 중요
회귀분석 결과, 국가들이 ‘제한적 면제(restrictive immunity)’로 전환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교역 구조, 특히 수출 네트워크였다. 주요 수출 상대국이 이미 제한적 면제를 채택했을수록, 자국이 뒤따라 전환할 확률이 크게 높았다. 이는 “직접적인 보복”이 아니라 ‘상호의존적 모방(diffusion through interdependence)’으로 규범이 확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수출이 수입보다 많은 국가는 자국 기업이 해외에서 피소될 위험을 우려해 절대면제를 유지하려 했고, GDP가 높고 민간부문이 강한 국가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또한 인권 관련 국제기구의 관할권을 수용하는 등 ‘주권 절대성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는 국가들도 제한적 면제를 채택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민주주의 수준이나 사법독립 등 제도적 변수들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이 결과는 “관습법의 변화가 정치체제보다 경제적 관계망과 규범적 수용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결과는 기존의 상호주의 중심 이론(reciprocity-based theories)을 근본적으로 도전한다. 국제관습법(CIL) 은 조약과 달리 ‘회원 간 교환’에 기반하지 않고, 위반이 누적되면 규범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국가는 “상대국이 나를 처벌할까”를 걱정하기보다, “내가 규범을 위반하면 이 규범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선례효과(precedential concern) 를 의식해 행동한다. 즉, 협력은 제재의 결과가 아니라 규범 자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집단적 우려로부터 나온다. 이는 인권, 환경 등 다른 관습법 영역에도 적용된다. Verdier와 Voeten은 이로써 *“CIL은 보복의 균형이 아니라 규범 유지의 균형에 의해 작동한다”는 새로운 설명틀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국가들이 규범 붕괴를 우려해 조심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일종의 ex post rationalization처럼 들림. 선례효과를 ‘우려’했다는 것을 어떻게 측정했는가? 국가의 의사결정문서, 외교전문, 회의록 등 질적 증거가 거의 없음. 단순히 “작은 나라가 먼저 바꿨고, 큰 나라가 나중에 바꿨다”는 패턴으로 이 심리적 메커니즘을 입증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음
선례효과가 실제로 ‘규범 준수의 동기’였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있는가? 아니면 단지 후행적 정합성(post hoc consistency)에 불과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