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와 조직이론 (대안이론)
McCalla, Robert B. 1996. “NATO's Persistence after the Cold War.” International Organization 50(3):445-475.
전통적인 동맹 연구는 주로 ‘왜 동맹이 형성되는가’와 ‘무엇이 동맹을 유지시키는가’에 초점을 맞춰 왔지만, 냉전 이후처럼 위협이 사라진 상황에서 동맹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현실주의(특히 신현실주의)는 동맹이 공통의 위협이 사라지면 해체된다고 예측하지만, NATO는 오히려 기능과 회원국을 확장하며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현실주의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편차 사례(deviant case)”로, 새로운 설명틀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저자는 조직이론과 제도주의 이론을 보완적으로 적용하여 NATO의 지속을 분석한다. 현실주의가 구조적 제약과 외부 위협에만 주목한 반면, 이 연구는 동맹 내부의 조직적 역동성과 회원국 간 상호작용, 그리고 각국의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해야 함을 강조한다. NATO는 단순한 군사동맹이 아니라, 회원국들의 제도적 조정과 학습을 통해 스스로를 재정의하고 있는 국제기구로 이해될 수 있다.
냉전 종식 후 NATO는 위협 평가 중심의 안보동맹에서 벗어나, 위험 관리와 국제 안정 기여를 목표로 한 다기능 조직으로 전환했다. 군사력 감축, 다국적 신속대응군 창설, 동유럽과의 협력 확대(북대서양협력위원회, PfP), 그리고 유엔·OSCE 등과의 연계 강화는 그 변화를 보여준다. 결국 NATO의 지속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동맹이 제도적 학습과 협력 확장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신현실주의와 동맹
고전적 현실주의와 월츠(Waltz)의 구조적 신현실주의(Structural Neorealism)는 국가들이 대립 세력의 힘에 균형을 맞추려 한다(balancing power) 고 본다. 여기에 대한 변형된 견해는, 단순한 힘(power)뿐 아니라 위협(threat) 이 인식될 때만 균형 행동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두 관점 모두 동맹의 형성 원인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동맹을 탄생시킨 힘의 균형 혹은 위협 수준이 변화하면, 동맹은 구조적 압력을 받게 된다. 대부분의 현실주의자들은 “위협이 동맹 형성의 충분조건은 아닐 수 있지만, 필수조건이다”라고 본다.
동맹의 결속(cohesion)은 존재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 왜냐하면 동맹은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고(공동 대응의무, 정책 조정 등), 막대한 자원(군대, 예산 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위협이 사라지면, 구성원들은 공동의 이익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되며, 이는 결속 약화로 이어진다. 신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는 NATO가 직면한 위협을 급격히 줄였고, 이에 따라 NATO는 약화되거나 해체되어야 했다. 특히 스티븐 월트(Stephen Walt)의 ‘위협균형 이론(balance-of-threat theory)’에 따르면, 소련의 붕괴와 함께 서방의 위협 인식이 급감했으므로 NATO의 결속은 약화되고 정책조정이 줄어들며, 회원국들은 각자 노선을 걷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비용-편익 계산(cost–benefit logic) 에 따르면, 동맹은 위협이 존재할 때만 유지된다. 동맹은 외교적 자율성 상실, 경제적 기회비용, 군사적 부담 등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따라서 위협이 사라지면, 회원국은 이러한 비용을 지불할 유인이 줄어들어 동맹을 떠나거나 참여를 축소하게 된다. 신현실주의 논리에 따르면, NATO는 (1) 방위비와 병력 규모를 축소하고, (2) 회원국 간 정책 불일치가 증가하며, (3) 보다 저비용의 국제협력 형태로 이동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달랐다. NATO는 국방비를 조정하면서도 통합지휘체계를 유지했고, 심지어 동유럽 협력기구(NACC) 와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PfP) 를 설립해 기능을 확장했다. 즉, 냉전 후에도 NATO는 여전히 활발하고 제도적으로 강인한 조직으로 남아 있었으며, 이는 신현실주의 예측과 모순된다.
결국 NATO의 지속은 단순한 안보동맹으로서는 설명될 수 없다. NATO는 일시적 군사연합이 아니라 정치·군사적 이중 구조를 갖춘 제도화된 조직으로, 순수한 ‘국가 간 합의체’가 아닌 자율적 조직적 행위자(organizational actor) 로 진화해왔다. 이러한 특성은 시스템 수준만을 분석하는 신현실주의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냉전 이후 NATO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조직이론(organizational theory) 과 관료제 이론(bureaucratic theory) 이 제시하는 통찰이 필요하며, NATO의 ‘조직적 이해관계’ 자체가 동맹의 지속을 이끌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조직이론과 NATO
조직이론과 관료제 이론은 신현실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NATO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분석 틀을 제공한다. 이 접근법은 NATO가 단순히 회원국들의 도구가 아니라, 조직 자체의 이해관계를 가진 행위자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기업 경영진이 주주와 다른 이해를 가질 수 있듯, NATO도 회원국과 다른 목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냉전 이후에도 NATO가 지속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Gayl Ness와 Steven Brechin은 조직이 “구성원들의 목표를 충족시키려는 개인과 집단의 집합체이며, 생존과 번영을 위해 스스로 목표를 수정하거나 포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조직은 창립 목적이 아니라 자기 생존을 위한 적응성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NATO는 브뤼셀 본부만 해도 약 3,750명의 상근 인력을 보유한 거대 조직이며, 수많은 부서·시설·군사기구를 유럽 전역에 두고 있다. 이들은 국가 소속이면서도 ‘NATO 커뮤니티’라는 국제적 정체성을 공유하며, 조직의 존속을 자신의 이해와 연결시킨다. 조직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조직은 생존을 위해 세 가지 행동을 보인다.
- 변화 저항(resistance) — 환경이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고, 자원(예산·인력)을 방어한다.
- 정당성 강화(affirmation) —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필수적임을 강조하여 외부 지원과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 적응(adaptation) — 생존을 위해 목표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과업을 창출한다. 이를 ‘목표 승계(goal succession)’라 부른다.
실제로 1988~89년 NATO는 소련 위협이 사라졌다는 주장에 부정적이었고, 기존 구조와 훈련 체제를 유지하려 했다. 이후 소련 붕괴 후에는 위협이 ‘직접적’에서 ‘잠재적’으로 바뀌었다는 논리로 존속을 정당화했다(핵무기가 있기 때문). 동시에 사무총장 뵈르너(Wörner)는 새로운 임무(동유럽 안정, 평화유지 등)를 제안하며 NATO의 역할을 확장하려 했다. PfP(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나 NACC(북대서양협력위원회) 창설도 이러한 적응 전략의 결과였다. 다만 NATO는 예상과 달리 핵무기 체계의 축소나 OSCE·UN 등과의 협력 등 조직적 자율성의 일부 포기도 수용했다. 이는 조직이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으로, NATO가 단순히 ‘관료제의 생존본능’만으로 움직인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92년에 NATO가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개입하고 있었음 (소수민족의 갈등까지))
국제제도주의 이론과 NATO
이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국제제도주의(international institutionalism) 접근이다. 이는 NATO를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규범·규칙·절차로 얽힌 유럽-대서양 안보체제(regime) 의 핵심 제도로 본다. 로버트 케오한(Robert Keohane)의 정의에 따르면 제도(institution)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식별 가능한 규칙과 규범의 복합체”이며, 제도주의는 이런 틀을 통해 국가 간 협력이 지속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현실주의가 동맹을 단기적 이익 계산의 결과로 본다면, 제도주의는 동맹이 제공하는 규범적·거래비용 절감 효과가 장기적 지속성을 낳는다고 본다. 즉, 한 번 형성된 제도는 새로 만드는 것보다 유지·수정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NATO는 이러한 제도적 특징을 가장 강하게 지닌 동맹이다. 단순한 군사협력체를 넘어, 공동의 절차·규범·정책결정 체계를 축적하며 회원국들 간의 상호 기대와 신뢰를 제도화했다.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회원국들은 새로운 문제(보스니아 내전, 동유럽 전환국 안정 등)가 생겨도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대신 기존의 NATO 틀을 수정·활용하려 한다. 이미 비용을 지불한 제도적 기반을 버리기보다, 그 위에 새로운 기능을 덧붙이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냉전 종식 이후 NATO는 OSCE·UN·WEU와의 협력, 동유럽 국가와의 관계 확대(NACC, PfP), 평화유지 작전 수행 등 새로운 역할을 수용했다. 1990~91년의 정상회의에서도 NATO는 “정치적 협의의 장이자 유럽 통합 과정의 플랫폼”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했다. 이는 조직이론이 예상한 ‘기능 독점 유지’와 달리, 기존 제도적 절차를 기반으로 다자협력을 확장한 사례이다. 다만, 제도주의 역시 한계를 가진다. NATO의 내부 구조 개혁(지휘체계 조정, 인력·예산 감축 등)은 여전히 더디며, 이는 회원국 국내정치의 제약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정치 요인의 역할
마지막으로, NATO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국내정치 요인(domestic politics) 을 고려해야 한다. 신현실주의는 외부 위협에 대한 대응을, 제도주의는 제도적 지속성을 설명하지만, 두 이론 모두 국내적 지지와 비용 분배 문제를 간과했다. 동맹은 비용이 큰 정치적 약속이므로, 내부 지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프랑스의 군사구조 이탈, 스페인의 조건부 가입, 미국의 의회 압력 등은 모두 국내 여론과 이익집단의 영향을 반영한다.
냉전기에는 ‘소련 위협’이 동맹 지속의 정당성을 제공했지만, 위협이 사라진 지금은 공공 지지가 약화되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NATO가 “해외 부담(foreign commitment)”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민주·비민주 국가 모두에서 지도자는 국내 파벌과 이해관계의 균형을 맞추며 외교정책을 수행한다. 방위산업·의회·군 등 특정 집단은 동맹을 통해 이익을 얻지만, 반대로 비용을 부담하는 집단은 불만을 제기한다. 따라서 NATO의 존속 여부는 단순히 위협 수준이 아니라, 국내 정치 연합과 사회적 지지의 강도에 달려 있다.
요약하자면, 세 접근법의 결합은 NATO의 냉전 이후 지속을 다층적으로 설명한다.
- 신현실주의는 위협이 사라지면 동맹도 약화된다고 예측하지만,
- 조직이론은 NATO의 관료제적 생존 논리를 보여주며,
- 국제제도주의는 제도적 경로의존성과 규범적 유인을 통해 동맹의 지속을 설명한다.
여기에 국내정치적 제약이 결합되어, NATO는 단순한 군사동맹이 아니라 제도·조직·국내정치가 맞물린 복합적 네트워크로 남게 되었다.